
박효영 변호사
조합이 이미 통과시킨 총회 결의를 나중에 다시 뒤집을 수 있는가. 원칙적으로 총회는 종전 결의를 새로운 결의로 변경하거나 번복할 수 있다. 총회는 조합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이고, 다수결로 형성한 의사를 다시 다수결로 바꾸는 것은 단체 자치의 당연한 모습이다. 다만 그 자유에는 한계가 있는데, 강행규정을 위반해 무효인 결의는 단순한 재결의만으로 되살아나지 않고, 이미 인가·고시로 처분이 되어 확정된 사항은 총회 재결의만으로 번복할 수 없으며, 이미 형성된 제3자나 개별 조합원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번복은 허용되지 않는다.

원칙 — 종전 결의는 다시 바꿀 수 있다
정비사업은 조합설립부터 청산까지 여러 해에 걸쳐 진행되고, 그동안 부동산 시장과 정부 정책, 관련 법령이 계속 변한다. 조합이 사업시행계획이나 관리처분계획, 예산·계약 등에 관하여 이미 의결한 사항을 사정 변경에 맞추어 다시 의결하는 일은 실무에서 흔하다. 종전 결의에 절차상 흠이 있었던 경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시 총회를 열어 같은 안건을 새로 의결하거나 추인하는 경우도 많다. 총회가 한 번의 결의에 구속되어 이를 바꿀 수 없다면 사업은 발이 묶이므로, 새로운 결의로 종전 결의를 변경·대체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된다. 문제는 번복 결의가 이루어졌을 때 종전 결의를 둘러싼 다툼이 어떻게 되는가이다.
번복하면 종전 결의를 다툴 이익이 사라진다
대법원 2016. 10. 13. 선고 2012두24481 판결은 조합이 사업시행계획안과 관리처분계획안을 의결한 뒤 다시 총회에서 새로운 결의를 거쳐 이를 변경하고 인가를 받은 사안에서, 종전 결의의 효력을 따로 다툴 수 있는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당초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의 조합원 총회에서 사업시행계획안 및 관리처분계획안에 대하여 결의를 한 후에 다시 조합원 총회에서 새로운 결의를 거쳐 사업시행계획 및 관리처분계획을 변경하여 관할 행정청의 인가를 받은 경우에도, 행정처분인 변경된 사업시행계획 및 관리처분계획에 대하여 항고소송의 방법으로 취소 또는 무효확인을 구하여야 하고, 당초의 조합원 총회의 효력 유무를 다투는 확인의 소를 제기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되지 아니하며, 또한 설령 변경 전의 사업시행계획안 및 관리처분계획안에 대한 종전 결의에 하자가 있다 하더라도, 종전 결의의 무효확인을 구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과거의 법률관계 내지 권리관계의 확인을 구하는 것에 불과하여 권리보호요건으로서 확인의 이익이 없다.
새로운 결의로 종전 결의가 변경·대체되면, 남는 것은 새 결의에 따른 계획이므로 종전 결의는 이미 지나간 법률관계가 된다. 따라서 종전 결의만을 떼어 무효확인을 구하는 것은 과거의 권리관계 확인에 불과하여 소의 이익이 인정되지 않는다. 조합이 종전 결의의 하자를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적법한 절차를 갖추어 다시 의결하는 실무의 흐름을 뒷받침하는 판단이다.
인가·고시된 사항은 재결의만으로 번복하지 못한다
번복의 자유는 결의가 아직 처분으로 확정되기 전 단계에서 넓게 인정된다. 총회 결의가 행정청의 인가·고시를 거쳐 행정처분이 된 뒤에는 총회 재결의만으로 이를 뒤집을 수 없고, 처분 자체를 대상으로 정해진 절차를 밟아야 한다. 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8다97737 판결은 그 한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관리처분계획에 대한 관할 행정청의 인가·고시까지 있게 되면 관리처분계획은 행정처분으로서 효력이 발생하게 되므로, 총회결의의 하자를 이유로 하여 행정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항고소송의 방법으로 관리처분계획의 취소 또는 무효확인을 구하여야 하고, 그와 별도로 행정처분에 이르는 절차적 요건 중 하나에 불과한 총회결의 부분만을 따로 떼어내어 효력 유무를 다투는 확인의 소를 제기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되지 않는다.
이 법리를 번복의 관점에서 보면, 인가·고시 전이라면 총회는 종전 결의를 새 결의로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고 조합원도 종전 결의의 무효확인을 구해 하자 있는 계획이 처분에 이르지 못하도록 저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인가·고시로 처분이 성립하면, 그 사항을 바꾸려면 총회 재결의에 더하여 변경인가라는 행정절차를 거쳐야 하고, 다투는 방법도 처분에 대한 항고소송으로 좁혀진다. 번복의 시점이 처분 성립 전인지 후인지에 따라 그 방법과 효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무효인 결의는 재결의로 되살아나지 않는다
번복이나 추인의 또 다른 한계는 강행규정 위반이다. 무효인 결의를 총회에서 다시 추인하더라도 그 무효의 원인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 결의는 유효해지지 않는다. 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4다61340 판결은 무효인 시공자 선정결의를 추인한 사안에서 강행규정을 위반하여 무효인 행위는 그 무효사유가 제거되지 않는 한 추인을 하더라도 유효하게 되지 않으므로, 새로운 입찰절차를 밟아 다시 시공사를 선정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단순히 무효인 시공자 선정결의를 추인하는 결의를 하는 것만으로 하자가 치유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번복·추인이 만능이 아니라는 점, 무효의 원인 자체를 제거해야 비로소 새로운 결의가 유효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수결이라도 특정 조합원의 권리는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
번복이 다수결로 이루어진다고 하여 그 내용에 아무런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총회의 다수결은 조합원 공동의 이해에 관한 사항을 정하는 것이 원칙이고, 특정 조합원이나 소수의 개별적 권리에 관한 사항까지 다수의 의사만으로 좌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상가 조합원과 같이 종전 결의를 신뢰하여 이미 구체적 권리를 형성한 조합원에게 불리하게 종전 결의를 번복하는 경우, 그 번복이 형평과 신의칙에 반하여 효력이 문제될 수 있다. 종전 결의로 이미 확정적으로 형성된 제3자의 권리나 조합원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번복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조합이 종전 결의를 번복할 때에는 그 변경이 특정 조합원에게 부당한 불이익을 주지 않는지, 이미 형성된 신뢰를 깨뜨리지 않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정리
| 판례 | 쟁점 | 결론 |
|---|---|---|
| 대법원 2016. 10. 13. 선고 2012두24481 | 종전 결의를 새 결의로 변경·인가받은 경우 종전 결의 무효확인 | 원칙적으로 소의 이익 없음(과거 법률관계 확인) |
| 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8다97737 | 인가·고시 후 총회결의만 따로 다투는 확인의 소 | 불허, 처분에 대한 항고소송으로 다퉈야 |
| 대법원 2017. 5. 30. 선고 2014다61340 | 무효인 결의의 추인·재결의로 치유 가부 | 무효사유 제거 없이 재결의만으로는 치유 불가 |
체크리스트
조합 집행부가 종전 결의를 번복하거나 변경하려는 경우, 먼저 그 사항이 이미 인가·고시로 처분이 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처분 전 단계라면 새로운 총회 결의로 종전 결의를 변경·대체할 수 있고, 이때에도 소집통지·의사정족수·의결정족수 등 총회의 절차 요건을 빠짐없이 지켜야 한다. 반면 이미 인가·고시된 사항은 총회 재결의만으로는 바꿀 수 없고 변경인가 절차까지 밟아야 하므로, 재결의와 변경인가를 함께 계획해야 한다. 종전 결의에 강행규정 위반과 같은 무효 사유가 있었다면, 추인 결의만 되풀이하지 말고 그 무효의 원인을 제거한 뒤 처음부터 적법한 절차로 다시 의결해야 한다.
번복 결의로 자신의 권리가 영향을 받는 조합원은 다툼의 대상을 정확히 골라야 한다. 종전 결의가 새 결의로 대체된 뒤에는 종전 결의만을 다투는 것은 소의 이익이 없을 수 있으므로, 현재 효력을 가진 계획이나 처분을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다수결로 이루어지는 번복이라도 특정 조합원의 개별적 권리나 이미 형성된 신뢰를 부당하게 침해한다면 그 한계가 문제될 수 있으므로, 결의의 내용과 그 영향을 구체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총회 결의의 번복과 재결의는 시점과 절차에 따라 효력이 크게 달라지므로, 결의를 다시 하기 전에 그 방법과 효과를 미리 점검하는 검토가 필요하다.
이 글은 일반적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사안의 결론은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구체적 분쟁은 사실관계와 적용 법령을 함께 검토받으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