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효영 변호사
정비사업 조합은 설계·정비사업전문관리·철거·홍보 용역부터 자금 차입까지 수많은 계약을 체결하며 사업을 진행한다. 이 가운데 예산에 없는 지출을 수반하는 계약을 조합장이 총회 의결 없이 체결하면 어떻게 되는가. 총회 의결 없이 체결된 조합원 부담 계약은 상대방이 그 사정을 몰랐더라도 무효이고, 계약을 체결한 조합임원은 사후 추인과 관계없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 제45조 제1항 제4호와 제137조 제6호가 그 근거다. 어떤 계약이 총회 의결을 요하는지, 의결 흠결의 민사·형사 효과가 무엇인지, 사후 추인으로 무엇이 보완되고 무엇이 남는지를 차례로 살핀다.

총회 의결을 요하는 계약의 범위
도시정비법 제45조 제1항 “다음 각 호의 사항은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 4.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에게 부담이 되는 계약”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에게 부담이 되는 계약’이란 조합 예산에 정해진 항목과 범위를 벗어나 금원을 지출하거나 채무를 부담함으로써 그 비용이 조합원에게 돌아가는 계약을 뜻한다. 판단의 출발점은 총회가 의결한 예산서이고, 예산에 항목과 범위가 편성되어 있는 지출이라면 그 범위 안의 계약은 별도의 총회 의결 없이 체결할 수 있다. 반대로 예산에 항목이 없거나 편성된 금액을 초과하는 계약은 총회 의결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의결은 총회만 할 수 있는 것으로, 도시정비법 시행령 제43조가 정하는 대의원회가 총회의 권한을 대행할 수 없는 사항에 포함되므로 이사회·대의원회 의결로 갈음하지 못한다.
의결의 시점도 요건의 일부다. 판례는 처벌규정과의 관계에서 ‘총회의 의결’을 원칙적으로 사전 의결로 이해하는데, 계약이 이행된 뒤의 동의만으로는 조합원 의사를 사업 추진에 반영한다는 규정의 목적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조합이 추진하는 모든 계약의 세부 내용을 총회가 미리 확정할 수는 없다. 판례는 추진하려는 계약의 목적과 내용, 조합원이 부담하게 될 비용의 정도를 개략적으로 밝히고 총회 의결을 거쳤다면 사전 의결의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본다. 다만 개별 계약의 내용과 부담 정도가 드러나지 않은 채 ‘기 추진 업무 일체를 추인한다’는 식의 포괄 의결만 있었던 경우라면 사전 의결이 있었다고 평가받기 어렵다.
민사상 효력 — 강행규정 위반으로 무효
대법원은 재건축조합의 대표자가 도시정비법의 강행규정에 위반하여 적법한 총회 결의 없이 계약을 체결한 경우 그 계약은 효력이 없고, 상대방이 그러한 법적 제한을 알지 못하였다거나 총회결의의 존재·정족수에 관하여 잘못 알았더라도 무효라는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6. 5. 12. 선고 2013다49381 판결). 강행법규 위반의 계약에는 상대방이 선의·무과실이어도 민법상 비진의표시나 표현대리의 법리가 적용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통상의 거래라면 대표자의 권한 외관을 신뢰한 상대방이 표현대리로 보호될 수 있으나, 총회 의결은 조합 내부의 대표권 제한이 아니라 법률이 정한 요건이므로 신뢰 보호의 문제로 넘어가지 않는다.
같은 판결은 정족수가 가중되는 국면까지 다루었다. 당초 재건축결의에서 정한 조합원의 비용분담 조건을 변경하는 내용의 안건은 정관변경 규정을 유추적용하여 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요하고, 그 동의 없이 시공자와 체결한 계약도 효력이 없다고 하였다. 총회 의결이 형식적으로 존재하더라도 안건의 실질이 비용분담 조건의 변경이라면 가중 정족수를 갖추었는지까지 살펴야 한다는 의미다.
계약 상대방 보호 — 지역주택조합 판례와의 대비
비슷한 규율이 주택법상 지역주택조합에도 있다. 주택법령은 지역주택조합이 예산으로 정한 사항 외에 조합원에게 부담이 될 계약을 체결할 때 총회 의결을 거치도록 정하고, 대법원은 이를 위반한 계약이 원칙적으로 무효라고 하면서도 계약상대방이 절차적 요건의 흠결을 과실 없이 알지 못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을 밝힌 경우에는 계약의 효력이 인정될 여지를 두었다(대법원 2022. 8. 25. 선고 2021다231734 판결). 도시정비법상 조합에 관한 2013다49381 판결이 상대방의 선의·무과실을 묻지 않고 무효라고 한 것과 견주면 상대방 보호의 폭이 서로 다르다. 도시정비법상 조합과 거래하는 상대방은 총회 의결서의 존재와 안건의 특정, 정족수까지 확인하지 않으면 계약 무효의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게 된다.
조합임원의 형사책임
도시정비법 제137조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6. 제45조에 따른 총회의 의결을 거치지 아니하고 같은 조 제1항 각 호의 사업을 임의로 추진한 조합임원(전문조합관리인을 포함한다)”
대법원은 이 처벌규정의 ‘총회의 의결’이 원칙적으로 사전 의결을 의미한다고 보아, 조합임원이 사전 의결 없이 예산 외 조합원 부담 계약을 체결한 때에 범행이 성립하고 그 뒤 총회의 추인 의결이 있더라도 범행이 소급하여 불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10. 6. 24. 선고 2009도14296 판결). 추인 의결은 민사상 하자를 보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뿐, 계약 체결 시점에 이미 성립한 범죄를 소멸시키지 못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처벌 주체인 ‘조합임원’의 범위도 판단하였다. 조합설립인가처분이 무효여서 조합이 처음부터 도시정비법상 조합으로 성립하지 못하였다면, 그 임원은 처벌규정이 정한 ‘조합의 임원’에 해당하지 않아 총회 의결 없이 계약을 체결하였더라도 이 규정으로 처벌할 수 없다(대법원 2014. 5. 22. 선고 2012도7190 전원합의체 판결).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형벌규정의 문언을 엄격하게 해석한 것이다. 아울러 대법원은 형식적으로 총회 의결을 거쳤더라도 그 의결에 부존재 또는 무효의 하자가 있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것에 해당한다고 하였으므로(대법원 2014. 11. 13. 선고 2013도4316 판결), 의결 절차의 외형을 갖추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의결 자체가 유효하여야 한다.
무효 이후의 정산 — 부당이득 반환과 추인 의결
계약이 무효로 판단되면 상대방은 계약에 기한 대금을 청구할 수 없다. 용역이 이미 수행되었다면 부당이득 반환을 구하는 길이 남지만, 반환 범위는 약정 대금이 아니라 조합이 실제로 얻은 이익을 기준으로 정해지므로 수행된 용역의 객관적 가치와 조합에 현존하는 이익을 상대방이 개별적으로 입증하여야 한다. 약정한 대가 전액을 회수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실무에서 무효의 하자를 보완하는 수단은 총회의 추인 의결이다. 총회가 계약의 목적과 내용, 조합원의 부담을 확인하고 문제 된 계약을 추인하면 조합이 그 무효를 계속 주장하기는 어려워진다. 계약 상대방으로서는 추인 의결의 상정을 조합에 요구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보완 경로다. 다만 앞서 본 대로 추인의 효력은 민사관계에 그치고 조합임원의 형사책임에는 미치지 않으므로, 두 국면을 나누어 대응하여야 한다.
판례 비교
| 판결 | 쟁점 | 결론 |
|---|---|---|
| 대법원 2016. 5. 12. 선고 2013다49381 판결 | 총회 결의 없는 계약의 효력과 상대방 보호 | 무효. 상대방이 선의라도 비진의표시·표현대리 법리 적용 배제, 비용분담 조건 변경은 3분의 2 이상 동의 필요 |
| 대법원 2010. 6. 24. 선고 2009도14296 판결 | ‘총회의 의결’의 의미와 사후 추인 | 원칙적으로 사전 의결. 사후 추인 의결이 있어도 이미 성립한 범행은 소급하여 불성립하지 않음 |
| 대법원 2014. 5. 22. 선고 2012도7190 전원합의체 판결 | 조합설립인가 무효와 처벌 주체 | 인가가 무효여서 조합이 성립하지 못하면 그 임원은 ‘조합임원’에 해당하지 않아 처벌 불가 |
| 대법원 2014. 11. 13. 선고 2013도4316 판결 | 하자 있는 총회 의결의 취급 | 부존재·무효 하자가 있는 의결은 총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것에 해당 |
| 대법원 2022. 8. 25. 선고 2021다231734 판결 | 지역주택조합의 총회 결의 없는 계약 | 원칙적 무효. 상대방이 흠결을 과실 없이 알지 못한 특별한 사정을 입증하면 효력 주장 가능 |
체크리스트
조합과 조합임원은 계약 체결 전에 지출의 예산 근거, 안건의 특정, 의결 주체를 차례로 점검하여야 한다. 해당 지출이 의결된 예산의 항목과 범위 안에 있으면 별도 의결이 필요 없으나, 그렇지 않다면 계약의 목적·내용과 조합원 부담의 정도를 개략적으로라도 밝힌 총회 의결을 먼저 거쳐야 하고, 대의원회·이사회 의결로 대신할 수 없다. 백지위임에 가까운 포괄 의결은 사전 의결로 인정받지 못할 위험이 있다. 의결 없이 계약이 이미 체결된 상태라면 지체 없이 추인 의결을 추진하되, 추인이 형사책임까지 해소하지 못한다는 점을 함께 고려하여 대응 방안을 세워야 한다.
정비업체·시공자 등 계약 상대방이라면 계약 전에 총회 의결서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원칙이다. 도시정비법상 조합과의 거래에서는 선의·무과실이라도 보호받지 못하므로, 의결서의 존재만이 아니라 그 안건에 해당 계약이 특정되어 있는지, 비용분담 조건의 변경이 포함되어 있다면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갖추었는지까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총회 의결 전에 용역에 착수하면 계약이 무효로 될 경우 부당이득의 한도에서만 회수가 가능하므로 착수 시점을 의결 뒤로 미루는 것이 안전하다. 총회 의결은 정비사업 계약 분쟁에서 가장 자주 다투어지는 요건이고, 예산·안건·정족수의 사전 점검이 분쟁 예방의 요체다.
이 글은 일반적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사안의 결론은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구체적 분쟁은 사실관계와 적용 법령을 함께 검토받으시기를 권합니다.